1. 본문 읽기
〈롬 9:14-33, 쉬운성경〉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공정하지 못하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15)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가 자비를 베풀고자 하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고, 불쌍히 여기고자 하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6) 그러므로 모든 것이 사람의 요구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17)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파라오에게 “내가 너를 왕으로 세운 것은 너를 통해 내 능력을 나타내고, 내 이름을 온 땅에 두루 전하기 위함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18)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뜻대로 어떤 사람에게는 자비를 베푸시고, 또 어떤 사람은 완고하게도 만드십니다. (19)
<하나님의 분노와 자비> 그러면 여러분 중에서는 나에게 이렇게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못했다고 우리를 책망하시는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20)
그러나 사람이 무엇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말대꾸한단 말입니까? 토기그릇이 자기를 만든 사람에게 “나를 왜 이렇게 만들었소?”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21) 토기그릇을 만드는 사람이 똑같은 진흙으로 귀하게 사용할 그릇과 천하게 사용할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단 말입니까?
(22) 하나님께서 진노를 나타내시고 그분의 능력을 사람들에게 알리시기를 원하셨으면서도 멸망받기로 되어 있는 진노의 그릇들을 인내로써 참아 주셨다면 어쩌겠습니까? (23) 또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이 영광에 들어가도록 미리 준비하신 자비의 그릇들에게 그분의 풍성한 영광을 알게 하기 위해서였다면 어쩌겠습니까?
(24)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비의 그릇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유대인 중에서만 부르신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 중에서도 부르셨습니다. (25) 호세아의 글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 백성이 아니라’ 고 말했던 사람을 ‘내 백성’이라 부르겠고, 내가 사랑하지 않았던 사람을 사랑하겠다.” (26) 그리고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고 그들에게 말한 그 곳에서 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 불리게 될 것이다.” (27) 또한 이사야는 이스라엘에 관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을 것이다. (28)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이 땅에서 신속하고 철저하게 이루실 것이다.” (29) 또 일찍이 이사야가 이렇게 예언한 것과 같습니다. “만군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후손을 남겨 두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소돔처럼 되고, 고모라처럼 되었을 것이다.”
(30) <이스라엘과 복음> 이러한 사실에 대해 우리가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의를 추구하지 않았던 이방인들이 믿음에서 나오는 의를 얻었습니다. (31) 그러나 이스라엘은 의의 율법을 추구했지만 그것을 얻지 못했습니다. (32) 왜 얻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믿음에서 나오는 의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 그 의가 마치 행위에서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고 의를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33) 성경에 “보아라, 내가 시온에 사람들의 발에 부딪치게 하는 돌과 사람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를 놓으리니, 그를 믿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2. 본문 해설
굉장히 이해하기 난해한 구절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행위가 의롭기 때문에 구원하신것이 아니라 본인께서 정하신 예정대로 구원하셨습니다. 가령 예를 들어 모세시대 이집트 바로 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하기 위해 악하게 쓰셨습니다. 바로 왕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그 악역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그러면 바로 왕은 하나님 뜻대로 악역을 맡았을 뿐인데 어찌 바로 왕을 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누구를 구원하시고 누구를 악하게 쓸지는 전적으로 하나님 뜻입니다. 흙 덩어리가 토기장이에게 나는 왜 좋은 그릇으로 만들었고 나는 왜 나쁜 그릇으로 만들었냐고 따질 수 없듯이 미물이고 피조물인 우리는 거기에 이의를 제기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전능하신 하나님 주권 앞에 엎드려 하나님의 자비와 구원을 요청하는 일뿐입니다. 그만큼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무력하고 미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악한 사람은 돈도잘벌고 잘 먹고 잘 사는데 선한 사람은 병들고 가난하고 망하는 케이스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내 주변에도 하나님 잘 믿고 자타가 공인하는 선을 행하는 모범적인 형제님이 희귀 암에 걸려 고통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불공정하다고 항의합니다. 도대체 하나님 뜻이 무엇인지 왜 그러는지 알 수 없다고 불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미물인 인간은 하나님의 의도를 100프로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불공정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 따질 수도 없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주권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인간은 그 주권 앞에 엎드려서 자비와 구원을 베풀도록 요청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인간의 주권은 하나님 앞에서는 미미합니다.
3. 적용과 기도
형제를 치유하여 주십시오. 낫게 하여 주십시오. 하나님의 주권앞에 엎드려 겸손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 가족들을 치유하여 주시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경건의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2년 8월 15일 / 로마서 15장 14-21절 / 말과 행동을 통하여 (0) | 2022.08.15 |
---|---|
2020년 8월 9일 / 로마서 11장 25-36 / 복음의 관점과 선택적 관점 (0) | 2022.08.09 |
2022년 8월 7일 / 로마서 11장 1-12 / 이스라엘은 실패하지 않았다 (0) | 2022.08.07 |
2022년 8월 4일 / 로마서 10장 1-15 / 올바른 지식에 근거한 열심 (0) | 2022.08.05 |
22년 8월 2일 롬 9:1-11 :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 (0) | 2022.08.02 |
댓글